오일러 직선을 간단하게 증명해봅시다 (feat.SAS닮음, 주제탐구)
이 글에서는 오일러 직선의 존재성을
SAS닮음으로 증명하고
몇 가지 성질을 알아보겠습니다.
1. 오일러 직선
△ABC 가 주어지면, 외심, 무게중심, 수심은
하나로 정해집니다.
외심 O (세변의 수직이등분선의 교점)
무게중심 G (세 중선의 교점)
수심 H (세 수선의 교점)
이 때, 신기하게도 O, G, H 는 일직선 위의 점입니다.
이 일직선을 오일러 직선이라 합니다.
(예전에 특목고 입시면접에서 종종 나왔었습니다.)

2. 증명 (SAS닮음으로)
증명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여기서는 중2 내용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① O(외심), G(무게중심)만 그려놓고 시작합시다.

변 BC 의 중점을 M 이라 하면,
OM 은 BC 의 수직이등분선이고,
AM 은 중선이라서 AG:GM=2:1 입니다.
② 아래 그림과 같이
선분 OG 를 두 배 연장한 점을 X 라 하고,
AX 를 잇습니다.
이 때, X 가 수심임을 보이면 증명이 끝나겠죠?
그런데,
△GOM ∽ △GXA (SAS 닮음) 이 됩니다.
닮음비는 2:1 이구요.
왜냐하면, OG:GX=AG:GM=1:2 이고,
∠OGM=∠XGA (맞꼭지각) 이니까요.

그러면, 닮음의 대응각은 같아서, ∠OMG=∠XAG 가 됩니다.
엇각의 성질에 의해, OM//XA 이니
AX⊥BC 가 됩니다.
즉, △ABC 에서 직선 AX 는 A 로 부터 내린 수선입니다.
③ 이 과정을 B 로 부터 한 번 더 하면
마찬가지로, 직선 BX 는 B 로 부터 내린 수선이 됩니다.
이건 해보나마나 되는거지만,
이해를 돕기위해
그림으로 보여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④ 그러면, X 는 두 수선 AX, BX 의 교점이니
수심이 됩니다.
3. 결론
여기까지 결과를 정리해봅시다.
① △ABC 에서 O, G, H 는 일직선이다.
② G 는 OH 를 1:2 로 내분한다.
여기까지는 위에서 알게된 사실이고요,
중요한 몇 가지만 더 알려드리자면
③ OH 의 중점은 구점원의 중심
④ 아래와 같은 벡터합이 성립합니다.
⑤ 특수한 삼각형에서는 퇴화됩니다.
예를 들어, 정삼각형에서는 오일러 직선이
한 점이 되는 등등 입니다.
⑥ 포이어바흐 점 유도할 때 등장하고요,
⑦ O 를 H 에 점대칭한 점을
드롱샹 점(de Longchamps Point)이라 해요.
⑧ 많이 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차차 또 더 알려드리겠습니다.
⑨ 무엇보다도 종종(잊을만하면) 시험에 나옵니다.
4. 수학의 goat 오일러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는 “수학사에서 가장 다작한 천재”로 불립니다.
그의 이름을 딴 공식, 정리, 함수, 상수는 셀 수 없이 많으며, 오늘날 수학 교과서나 과학 서적을 펼치면 어김없이 그의 흔적을 마주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스위스의 10프랑 지폐에도 그의 초상이 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단지 수학계의 인물이 아니라, 스위스 국민에게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지폐에는 오일러의 초상과 함께 그가 연구한 구면 기하학의 투영도, 그리고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그래프가 함께 들어가 있어 그 상징성은 더욱 강합니다.

오일러는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났으며, 초기에는 신학자가 되길 기대받았지만, 일찍부터 수학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13세에 대학에 입학해 라틴어, 그리스어, 논리학을 공부했고, 16세에는 이미 논문을 제출할 정도였습니다. 그의 재능은 요한 베르누이 같은 당대 수학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곧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아카데미로 초빙되어 국제적인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오일러는 수학 전반에 걸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래프 이론의 효시가 된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 오일러 정리, 오일러 특성수, 오일러 각, 오일러-마스케로니 상수, 심지어 오일러 방법(Euler method)이라는 이름의 수치해석 기법까지, 그의 이름이 붙은 용어들은 지금도 교과서 곳곳에 살아 있습니다. 오일러가 정수론에 쏟은 열정은 페르마의 소정리, 합동식, 소수 분포 연구로 이어졌고, 물리학·광학·천문학·기계역학까지, 당대의 과학 분야에서 오일러가 다루지 않은 영역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지경입니다.
놀라운 점은 오일러가 총 800편에서 900편에 달하는 논문과 저서를 남겼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그의 사후 50년이 지나서도 오일러의 미발표 논문들이 계속해서 출판되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 학자가 죽은 후에도 학계에 영향을 줄 만큼의 자료를 남겼다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일생 중 가장 극적인 부분은 시력을 잃고 난 이후의 삶입니다. 30대 중반에 오른쪽 눈을 실명한 데 이어, 백내장으로 결국 양쪽 시력을 모두 잃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머릿속에서 모든 계산과 구조를 그려내며 구술로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시력을 잃자, 오히려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는 말은 당시 동료들이 그를 평한 유명한 표현입니다. 눈을 감고도 그는 수학의 세계를 더 깊이 들여다봤고, 오히려 그의 생산성은 더 높아졌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계산을 하다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집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수학과 함께였던 인생이었습니다.

스위스 10프랑 = 우리돈 17000원
수학계뿐 아니라 과학, 공학, 경제학, 정보통신까지, 오늘날에도 오일러의 사유는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스위스 10프랑 지폐 속의 오일러는 단순한 추상이 아니라, 현대 지성사의 살아 있는 상징입니다.
그는 눈앞의 세계가 사라졌을 때, 누구보다 멀리까지 볼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참고로, 수심의 존재성에 관한 증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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